북방 호걸 전백록(全百祿)을 아십니까?

2015. 11. 23. 08:41 인물열전

 




북방 호걸 전백록(全百祿)을 아십니까?

-함경북도 온성-


 

 

2001년 입국, 서울 양천구 강희섭(가명)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나서 자란 고향이 있다. 그곳이 사람 살기 좋고 나쁘고를 떠나 고향을 떠나온 사람이라면 늘 잊지 않고 그리워하는 것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더구나 나같이 고향 땅을 멀리 떠나, 살아생전 언제 다시 밟아볼지 모를 사람에게, 어린 시절 냇가에서 물놀이도 하고, 고기도 잡으면서 즐겁게 뛰놀며 꿈을 키우던 곳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실향의 아픔이 올라올 때면 내 절로 이런 노래를 지어 부르며 고향땅을 그려보군 한다.


 

 

뒷동산에 백살구꽃

곱게도 피어나면

고향따라 벌들이

날아드는 곳

그곳이 사랑하는 내 고향일세.

 

 

집앞에는 풍년벌이

아득히 펼쳐지고

가을이면 오곡이

물결치는 곳

그곳이 사랑하는

내 고향일세.

 

 

아 그리운

어머니 품이여


 

 

내가 살던 고향은 한반도의 최북단 함경북도 온성군이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서북쪽으로는 중국과 국경을, 남쪽으로는 회령시, 동쪽으로는 새별군(경원군)과 접해 있다. 인구는 13만 명 가량 된다. 경지 면적으로는 논이 약 2,000정보이고, 밭이 7,000정보나 된다. 나머지가 산지인데, 총면적의 87%를 차지한다. 대체로 해발고가 낮은 야산이다. 최북단이라고는 하지만 기후도 비교적 온화하고 사계절이 뚜렷하며 북부지대치고는 농사가 잘 되는 곳이다. 특히 두만강 연선은 아득한 평야지대로 벼농사가 잘 되며, 그밖에 참외, 수박, 오이, 배추, 고추, 마늘, 시금치 등 채소가 잘 되기로 이름난 고장이다. 해마다 중앙에서 고추나 마늘, 수박, 참외 같은 것을 가져가곤 한다.


 

 

야산마다 백살구나 사과배 과일나무를 가꾸어 봄이 되면 연분홍 살구꽃과 햐얀 사과배꽃이 마을을 둘러싸고 피어있어 참으로 볼만한 경치를 이룬다. 어디 그뿐이랴. 웬만한 땅을 삽자루 한 두 기장만큼 파면 석탄(갈탄)이 나오는, 북부탄전이다. 풍인탄광, 주원탄광, 상화탄광, 동포탄광, 온성탄광, 창평탄광, 강안탄광, 이런 탄광들에는 노동자만 각각 2-3천 명씩이나 되고, 석수탄광과 룡남탄광, 50호탄광, 수산탄광을 비롯한 30여개의 중소탄광들도 온성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온성 사람들은 석탄더미 위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땔 것이 많고 농사도 잘 되고 물 좋고 경치 좋은 고장, 온성. 온성은 그야말로 사람 살기에 나무랄 데 없는 고장이다. 여기는 유물유적들도 많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한다. 여진족과의 담판에서 항복을 받아낸 수항루’(북한 국보 제 50), 북방개척의 명장 신립장군의 공적을 보여주는 비석과 자모산성 등은 기나긴 역사의 흔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지역차별을 딛고 황해도병마절도사까지 올랐던 전백록의 일화를 빼놓을 수 없다. 조선 태조가 서북사람들을 높은 자리에 등용하지 말라고 한 이래 평안도와 함경도에는 500년 동안 벼슬자리에 오른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간혹 과거에 급제해도 현령 정도였고, 무장 중에는 정봉수와 전백록 두 사람이 유일했다. 전백록은 북방 호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위풍당당했고, 청렴결백하고 충직해서 지역적인 차별 속에서도 스스로 빛 난 사람이었다. 청렴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된 데에는 어머니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한 여인이 시집 온 지 몇 해 되도록 임신을 못해 고민하고 있던 어느 날, 베틀에 앉아 삼베를 짜고 있는데 별안간 흰 사슴 한 마리가 울타리 안으로 뛰어 들어와 쓰러졌다.

여인은 틀림없이 무엇엔가 쫓겨 온 것이라 짐작하고, 사슴을 뒤뜰 안에 데려가 물을 먹인 뒤 입고 있던 치마를 덮어 숨겨 두었다. 얼마 안 있어 포수 2명이 헐레벌떡 들어와 사슴을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여인은 베틀에 앉은 채로 태연하게 사슴은 온 적도 없거니와 아낙네 홀로 속옷차림으로 일하고 있는 집에 뛰어드는 무례가 어디 있느냐?”고 호통을 쳤다.

포수들은 황급히 사과하고 집을 떠났다. 그들이 멀리 간 것을 확인한 여인은 사슴을 몰래 놓아주었다. 그날 밤 잠을 자는데 꿈에 흰 사슴 한 마리가 나타나 옥동자를 얻으리라고 전했다.

그 후 그토록 기다려마지 않던 아이가 생겼고, 낳고 보니 꿈대로 사내아이였다. 흰 사슴이 주고 간 선물이라며, 아이의 이름을 백록이라 지었다. 그 백록이 자라 현종 임금 시절에 경흥부사가 되었다.


 

 

어느 날 백록이 잠을 자는데, 어머니가 몹시 수척한 모습으로 나타나 너무 놀란 나머지 어머니, 어머니부르며 깨어났다. 날이 밝자마자 어머니를 찾아뵈려고 행장을 꾸려 길을 떠났다. 여러 하인들이 가마를 탄 그의 뒤를 따랐다.

온성 집에 도착한 그는 어머니, 백록이 왔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어머니를 찾았다. 곧 열릴 줄 알았던 대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안에 계신 것을 확인한 백록이 문을 열어달라고 몇 번이나 애원했으나, 어머니는 문을 열지 않았다. 도리어 나는 너 같은 아들을 둔 일이 없다. 에미를 보겠다고 이렇게 바쁜 모내기철에 숱한 하인들을 거느리고 올라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몹쓸 놈 같으니라는 호통만 들었다. 백록은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백성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공직자로서 제 분수를 지키라는 준엄한 가르침이었다. 훌륭한 인물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어머니가 있다고, 바로 백록의 어머니가 그런 분이다.


 

 

우리 온성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이런 훌륭한 분의 이야기를 대대로 전해 들으며 자라왔다. 요즘 젊은 아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백록처럼 되는 것이 꿈이었다. 돌이켜보건대 내가 나서 자란 고향 온성은 남부럽지 않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풍부한 지하자원과 기후 등 모든 면에서 사람 살기 좋은 곳이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그 어느 고장과 비교해도 짝지지 않는 자랑스러운 곳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빨리 통일이 되어 살아생전 고향 땅을 다시 밟아보기를 소원하며 이곳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출처 : [오늘의 북한소식] 409, 좋은벗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