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8. 13. 13:38ㆍ 인물열전
연원직지 제1권 / 출강록(出疆錄)
○ 임진년(1832, 순조 32) 10월 29일
맑음. 중화에서 떠나 50리를 가 평양에 이르러 잤다.
아침에 떠나 40여 리를 가 평양에 이르러, 장림(長林)에서 수레에 내려 선고(先考)의 유애비(遺愛碑)를 봉심하고, 이어 대동강을 건너 성안으로 들어가 이청에 숙사를 정하였다. 노가재의 《연행일기(燕行日記)》에,
“서장관이 연광정(練光亭)에 든다.”
하였는데, 지금은 그곳에 정사의 숙사를 정하니, 어느 때부터 그렇게 하였는지 알지 못하겠다.
산천과 성곽은 옛날과 다름이 없었다. 근친(覲親) 왔을 때를 회상하니 역력하여 어제와 같은데, 따져 보니 벌써 18년이나 되었다. 감회가 깊어 눈물이 흐르는 것도 몰랐다. 옛날에 일을 맡아 보던 유향이노(儒鄕吏奴)가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이 많아 다투어 와 옛일을 이야기하며 퍽 분주하게 수접(酬接)하여 밤낮 여러 날 계속하였으나, 피로함을 느끼지 않았다.
본도 도사(都事) 전도해(全道海)가 보러 왔다.
석양 무렵에 도백(道伯) 척숙(戚叔) 심능악(沈能岳)을 가서 뵙고, 이어 부사와 같이 연광정 정사의 처소에 가 크게 기악(妓樂)을 벌였다가, 밤이 깊어서야 파하였다.
평양 기생은 본래부터 볼만하다고 하는데, 옛날 보던 자는 하나도 적(籍)에 없고, 간혹 와서 뵙는 자는 모두 촌뜨기뿐이었다. 붉은 꽃은 다 떨어지고 푸른 잎만이 그늘을 이루었으니, 뜬세상 세월이 어디라고 바쁘지 않으랴마는 이들에게는 더욱 심한 것 같아, 사람으로 하여금 즐겁지 못하게 하였다. 자리를 차지하여 노래 부르고 춤추는 자는 모두 다 을해년 이후에 태어난 자들이니, 참으로 이른바 ‘유랑이 간 뒤에 심은 것들[劉郞去後栽]’이다. 만약 취미를 아는 사람으로 하여금 평가하게 한다면, 전배(前輩)보다 못하다고 한다 하더라도 그리 가혹하지는 않을 것 같다.
[주-D001] 유랑이 …… 것들 : 당(唐) 나라 유우석(劉禹錫)이 낭주(朗州)로 귀양갔다가, 석방되어 서울에 돌아와 현도관(玄都觀)에서 놀며 시 한 수를 지었는데, 참소하는 자들이 그 시가 요로에 있는 사람들을 조롱한 것이라 하여, 그 때문에 파주(播州)로 재차 귀양가게 되었다. 그 시에 “현도관 속 복숭아나무 1000그루는, 모두 다 유랑이 간 뒤 심은 것들[玄都觀裡桃千樹 盡是劉郞去後栽]”이란 구절이 있다
[原文]
燕轅直指卷之一 / 十月 二十九日
晴。自中和發行。行五十里。至平壤止宿。
平明發行。行四十餘里。至平壤長林下車。奉審先考遺愛碑。仍渡大洞江。入城舍吏廳。稼記云。書狀入於練光亭。而今爲正使所舍。未知自何時然也。山川城郭。不改舊觀。回憶趨覲時。歷歷如隔晨。而俛仰已十八年。感懷不覺潸然。舊日任事之儒鄕吏奴。尙多存者。競來話舊。酬接頗擾。至於連日夜不已。而不覺爲疲。○本道都事 全道海 來見。○夕間往見道伯。沈戚叔能岳 仍與副使往練光亭正使所大張妓樂。夜深而罷。浿上花柳。素稱可觀。舊日所覩。無一在籍。間或來見者。皆成村樣。深紅落盡。綠葉成陰。浮世光陰。何處不忙。而爲此輩似較甚。令人不樂。擅場歌舞者。皆是乙亥後所生。眞所謂劉郞去後栽者。若使知趣者評品。謂之遜於前輩。恐非太苛。
◎ 연원직지[燕轅直指]
요약
조선 순조 때의 문신 김경선(金景善)의 베이징[北京] 기행록(紀行錄).
필사본. 6권 1책. 저자가 1832년(순조 32) 10월 동지사 겸 사은사 서경보(徐耕輔)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베이징에 갔다가 이듬해 3월 귀국할 때까지의 견문을 기록한 내용이다. 권1∼2 출강록(出疆錄)은 조선을 출발하여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의 기록이다. 여기에는 도중의 유명한 산천 ·정각(亭閣) ·묘우(廟宇) 등의 기문(紀文)과 관(館) ·아(衙) 등의 규모를 기록하고 끝에 북경도면(北京圖面)이 묘사되었다. 권3∼4 유관록(留館錄)은 베이징 도착 이후부터 귀로에 오르기까지의 기사를 일기체로 엮었다. 여기에는 베이징의 풍수(風水) ·연혁(沿革) ·성궐(城闕) ·위치 ·경승(景勝) 및 유명한 기관과 누관(樓館)에 대한 기문(紀文)이 실렸다. 권5 회정록(回程錄)은 귀로의 기록이며 끝에는 통주기(通州記) ·반산기(盤山記)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6 유관별록(留館別錄)은 천지(天地) ·산천(山川)과 19성(省)의 도리(道里) 및 재부(財賦) ·성곽시사(城郭市肆) ·기물(器物) ·금수(禽獸) ·인물 ·속요(俗謠) 등이 수록되어 었다. 1960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大東文化硏究院)에서 《연행선집(燕行選集)》 상(上)에 넣어 영인본으로 간행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연원직지 [燕轅直指] (두산백과)
◎ 김경선[金景善]
정의
1788(정조 12)∼1853(철종 4). 조선 후기의 문신.
개설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여행(汝行). 김성재(金聖梓)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안묵(金安默)이며, 아버지는 김기풍(金基豊)이며, 어머니는 유한장(兪漢蔣)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30년(순조 30) 진천현감으로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39년(헌종 5) 이조참의가 되고, 1841년(헌종 7) 대사성에 취임하였다. 1843년(헌종 9)에 전라도관찰사, 1850년(철종 1)에는 우참찬이 되었는데, 이때 진주사(陳奏使)로서 청나라에 다녀와 1853년 판의금부사가 되었다.
저서로 『연원직지(燕轅直指)』가 있다. 시호는 정문(貞文)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경선 [金景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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