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서예가 전 영(全 滎)

2009. 9. 5. 11:57 인물열전

 

조선시대 서예가

전  영(全  滎)

 

생몰년 미상.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달보(達甫), 호는 매은(梅隱).


부는 봉훈랑(奉訓郞) 행 중림도찰방(行重林道察訪) 전우(全雨)이고, 형은 전창(全昶), 전윤(全潤), 전양(全瀁)이며, 동생은 전염(全濂), 서형은 전준(全濬)이다.


인조(仁祖) 26년 (1648)

무자(戊子)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3등(三等) 70위로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636년(인조 14)

통신사(通信使) 임광(任絖), 부사 김세렴(金世濂), 종사관 황감(黃㦿) 일행을 수행하여 일본에 건너가 글씨로 이름을 떨치고, 다음 해 3월에 돌아왔다.


1647년

김해(金海)의 〈가락국김수로왕비(駕洛國金首露王碑)〉를 썼다.


[참고문헌] 

 韓國人名大辭典

朝鮮名臣錄

朝鮮金石總覽

CD-ROM 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찰방(察訪) 

 조선시대 각 도(道)의 역참(驛站)을 관장하던 문관(文官) 종육품(從六品) 외관직(外官職)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각 지방에 이르는 중요한 도로에 마필(馬匹)과 관명(官員)을 두어, 공문서(公文書)를 전달하고 공용여행자(公用旅行者)에게 숙소제공·마필공급 등 편리를 도모하는 기관(機關)을 역참이라 하였는데, 약간의 역참(驛站)을 1구(區)로 하여 이를 역도(驛道)라 칭하고, 그 구간의 마정(馬政)을 맡아보는 관직(官職)을 마관(馬官)이라 하여, 교통로(交通路)를 이용하여 정보수집(情報蒐集)도 하였는데 고려 후기부터 역승(驛丞)이라고 하다가 1535년(중종 30)부터 찰방(察訪)이라고 개칭하였다. 

 경국대전에 보면 조선 초기 전국에 23명의 찰방과 18명의 역승(驛丞)을 두어 총 537역을 관장케 했는데, 1535년(중종 30)에는 역승을 없애고 전국의 큰 역에 40명의 찰방을 두고 이를 찰방역이라 하였다. 

 경기도(京畿道)에 6원, 충청도(忠淸道)에 5원, 경상도(慶尙道)에 11원, 전라도(全羅道)에 6원, 황해도(黃海道)에 3원, 강원도(江原道)에 4원, 함경도(咸鏡道)에 3원, 평안도에 2원을 두었다. 작은 역에는 역장을 두어 찰방이 이를 관장하였는데, 중요한 요소에는 겸찰방(兼察訪) 12원을 두어 찰방의 비행(非行)을 감시하게 하였다. 

 

▷봉훈랑(奉訓郞)


 조선시대 종오품(從五品) 동반(東班) 문관(文官)에게 주던 품계(品階)이다. 종오품의 하계(下階)로서 봉직랑(奉直郞)보다 아래 자리이다. 1392년(태조 1) 문산계가 제정된 이후로 문관에게만 주다가, 대전회통(大典會通)에서는 종친(宗親: 임금의 4대손까지의 친족)에게도 이 품계를 주었다. 

 해당 관직으로는 종친부(宗親府)의 부령(副令), 충훈부(忠勳府)·의빈부(儀賓府)·개성부(開城府)·충익부(忠翊府)의 도사(都事), 돈령부(敦寧府)·한성부(漢城府)·수원부(水原府)·광주부(廣州府)·상서원(尙瑞院)·봉상시(奉常寺)·사옹원(司饔院)·내의원(內醫院)·상의원(尙衣院)·사복시(司僕寺)·군기시(軍器寺)·군자감(軍資監)·관상감(觀象監)·전의감(典醫監)·사역원(司譯院)·선공감(繕工監)·제용감(濟用監)·전생서(典牲署)·내자시(內資寺)·내섬시(內贍寺)·예빈시(禮賓寺)의 판관(判官), 규장각(奎章閣)의 직각(直閣), 교서관(校書館)의 교리(校理)·겸교리(兼校理), 홍문관(弘文館)의 부교리(副校理), 춘추관(春秋館)의 기주관(記注官), 승문원(承文院)의 교리(校理), 교서관·상의원·군기시·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전함사(典艦司)·전연사(典涓司)·예빈시·전설사(典設司)·빙고(氷庫)의 별좌(別坐), 광흥창(廣興倉)·소격서(昭格署)·종묘서(宗廟署)·사직서(社稷署)·경모궁(景慕宮)·평시서(平市署)·사온서(司醞署)·오부(五部)·의영고(義盈庫)·장흥고(長興庫)·조경묘(肇慶廟)·경기전(慶基殿)·영희전(永禧殿)·장녕전(長寧殿)·화령전(華寧殿)·건원릉(健元陵)·제릉(齊陵)·정릉(貞陵)·후릉(厚陵)·영릉(英陵)·현릉(顯陵)·장릉(莊陵)·사릉(思陵)·광릉(光陵)·경릉(敬陵)·창릉(昌陵)·공릉(恭陵)·온릉(溫陵)·효릉(孝陵)·강릉(康陵)·장릉(章陵)·장릉(長陵)·휘릉(徽陵)·영릉(寧陵)·숭릉(崇陵)·명릉(明陵)·익릉(翼陵)·의릉(懿陵)·혜릉(惠陵)·홍릉(弘陵)·영릉(永陵)·건릉(健陵)·인릉(仁陵)·수릉(綏陵)·현륭원(顯隆園)·휘경원(徽慶園)·숭의전(崇義殿)의 령(令), 장생전(長生殿)의 낭청(郞廳), 팔도(八道)의 도사(都事)·판관(判官)·현령(縣令) 등이 있었다. 

 직각, 기주관은 모두 예겸(例兼) 하였다. 처(妻)에게는 공인(恭人)의 작호(爵號)가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