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를 즐기려면…
70대 디자이너, 80대 여행가 … 어떤 것에든 몰두해야
어떻게 하면 100세까지 건강하고 즐겁게 살 수 있을까?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다. 적은 돈이나마 수입과 함께 보람을 주는 일을 해도 좋다. 오로지 취미에 올인할 수도 있다. 평생의 업을 이어간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노년의 로맨스를 만들어도 좋다.
01 스스로 삶을 디자인하라
지난 9월 18일 광주 북구에 있는 광주비엔날레전시관의 한 귀퉁이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녀들이 낙엽 굴러가는 것을 보고 자지러지게 웃는다는 말은 흔히 들어봤지만 그날 웃음의 주인공은 70세 안팎의 할머니들. 2009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개막식 이벤트를 위해 대전에서 기차를 타고 행사장을 찾은, 이름하여 ‘할머니가 행복한 공방’의 주인장들이다.
6명의 공방 할머니는 하루 종일 이어지는 관람객의 눈길과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 속에서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그들이 즐거운 이유는 자신이 하는 일을 단순한 일, 흔히 생각하는 ‘노인 일거리’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름다운 액세서리를 만들고 그들이 만든 액세서리는 백화점 진열대와 젊은 여성의 목과 가슴 위에서 자태를 뽐낸다.
멋진 액세서리들은 할머니의 자긍심을 북돋우고 일하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어느 결에 4년째 공방에서 작업해 온 할머니들은 납품일자를 지켜야 하는 상황을 여러 번 겪으면서 책임감마저 투철해졌다.‘할머니가 행복한 공방’은 적극적 사고와 적극적 대응에서 시작됐다.
‘이 나이에 돈 몇 푼 벌어 뭘 해? 자식들이 주는 용돈으로 놀러나 다니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디자인하는 그들의 하루하루가 행복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할머니 공방에는 매일 아이들과 젊은 여성 그리고 청년들까지 할머니로부터 액세서리 만드는 법을 배우려고 온 사람들로 길게 줄이 늘어선다.
02 어떤 것이든 사랑에 빠져라
우리나라에는 무인도를 포함해 3000여 개의 섬이 있다고 한다. 그중 1000여 개의 섬을 다녀온 81세 노시인 이생진씨.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무인도조차 그 앞에서는 두 발로 걷기에 딱 좋은 아담한 섬에 불과하다. 대표 시인 ‘그리운 바다 성산포’가 말해주듯 그는 특히 제주도를 사랑한다.
말로만 명예도민, 명예시민 하는 사람들과 달리 그는 한 달에 몇 차례씩 제주도를 오간다. 어떤 이들은 은퇴 후 ‘오늘도 골프, 내일도 골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하지만 이생진 시인은 오늘도 여행, 내일도 여행이다. 특히 그는 걷기에 빠져 있다. 아니다. 그가 빠져 있는 것은 걷기가 아니다.
그는 컴퓨터에 빠져 있다. 문서프로그램은 이미 오래전부터 익숙하게 다루고 있지만 누군가 컴퓨터의 어떤 프로그램이 좋다고 하면 그 프로그램을 바로 배우기 시작한다. 어느 날인가는 블로그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블로그를 만들었다. 아니다. 그는 컴퓨터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젊은 제자들과 사랑에 빠져 있다.
그는 무엇하고나 사랑에 빠진다. 그의 열정은 그야말로 밑도 없고 끝도 없어 그를 ‘노시인’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는 유명한 시인이지만 전혀 권위적이지 않아 그를 그냥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그는 두 발로 걸을 수 없는 섬은 섬이 아니라며 오늘은 만재도, 내일은 우이도를 향해 길을 떠났다. 작은 노트북과 USB, 그리고 스케치북이 담긴 배낭을 메고 말이다.
03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서해안 대부도 남쪽 고랫부리 선창가. 바다가 지척인 곳에 이병혁 박사(물리학)의 6.6㎡ 남짓 되는 작업실이 있다. 그의 꿈은 어딘가에 있을 보물섬을 찾아 작은 배를 타고 서해를 떠다니는 것이다. 그래서 며느리가 ‘꼬마선장’이라는 별명을 붙여 줬다고 한다.
온갖 공구와 각종 재료가 가득한 작업실 앞에는 3년이나 공 들인 길이 5m가량의 배가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새 배의 선체 바닥은 해안가에서 주운 대나무를 반으로 가른 후 이어 붙여 만들었다. 그는 남에게 시키면 성취감은커녕 재미도 없다며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만든다. 옆에서 보던 부인도 반전문가가 됐다.
“난 스트레스도 없고 건강해요. 건강 비결은 그저 잘 먹고 많이 움직이는 거죠. 지나간 일을 돌아보고 후회하는 걸 아주 싫어합니다. 후회해도 과거는 되돌아오지 않거든요. 또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난 내가 늙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냥 꾸준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날까지 할 뿐입니다.”
그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래야 혼자가 돼도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팔순이 넘은 꼬마선장은 새 배를 고랫부리 앞바다에 띄우고 인근 섬을 탐험할 생각으로 도르래를 열심히 움직인다.
04 노년의 로맨스도 당당하게
세계미래학회 회장인 파비엔 구보디망은 『세계적 미래학자 10인이 말하는 미래혁명』이라는 책에서 멀지 않은 미래에 인간 수명이 120세가 될 것이며 그때는 평범한 사람도 결혼을 두세 번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미 한 남자와 수십 년을 살아버린, 그래서 남자에 대해 무척 잘 안다고 생각하는 중년 혹은 노년의 여성들이 호락호락하게 늦은 결혼을 생각할까?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남성이 있다면 한번쯤 관심을 가져볼지 모르겠다. 아직은 뜨거운 볕이 남아 있는 초가을, 필자는 서울의 한 노인복지관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었는데 한 할아버지가 그 앞을 지나가다가 돌아섰다. 그리곤 무어라 중얼거리며 발길을 뗐다.
그러다가 다시 뒤돌아보고 또 중얼거리며 발길을 뗐다. 그렇게 반복하길 서너 차례. 그러더니 필자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하는 말이 “참 곱다”였다. 이어서 커피 한 잔 하자고 권유했지만 아직 점심 전이라 사양했다. 할아버지는 혹 필자가 사라질까 걱정되는지 동행에게 커피를 사 오라 시키고는 자신은 혼자 산다며 묻지도 않은 답을 하더니 이것저것 질문을 퍼부었다.
필자의 나이를 알고서 손가락을 꼽더니 이내 발끈하며 화를 내는 것이 아닌가? “에이! 내가 스무 살만 차이 나도 어떻게 해 보려고 했는데, 스물다섯 살 차이는 감당하기 좀 그래. 아직 점심 전이라며? 어여 가서 밥이나 자시구려!”50대 중반의 필자가 80세 할아버지에게 보기 좋게 딱지를 맞은 것이다.
이 얘기를 들은 혹자는 늙은이가 주책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노인의 용기가 참으로 멋지지 않은가? 용감한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는 속담에 연령 제한은 없다. 많은 이가 평균수명 100세 시대라고 하면 ‘욕심도 많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다’ ‘빨리 죽겠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평균수명이 80세건 100세건 혹은 120세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면 지루할 틈 없이 사는 것이 잘 사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젊어서 경제적 이유로, 양육 때문에, 부모 봉양하느라, 이런저런 이유로 하지 못한 일을 하면서 살다 보면 건강은 저절로 유지될 것이다.
장수시대 그리고 다양성의 시대, 컨버전스(융합) 혹은 디버전스(기능 분리) 시대에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나의 의지, 나의 욕구, 나의 꿈, 나의 희망 그것 이외에.
홍정구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살핌전 큐레이터 ·『나이 듦을 즐긴다는 것』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