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집에만 불 나랴? 왕만두집에도 불났다. 점심시간과 저녁시간, 유명 왕만두집 앞엔 때 아닌 전쟁이 벌어진다. 20분 이상 줄 서는 것은 기본, 새치기나 자리 맡아주기는 꿈도 못 꾼다.
“도대체 얼마나 맛있는지 한 번 보자”며 투덜대는 손님, 어마어마한 줄을 보고 식겁하고 돌아가는 손님도 적지 않다. 20대 젊은이에겐 식사대용으로 찾고, 60~70대 노인은 아련한 향수를 떠올리며 먹는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줄 서야 먹을 수 있다'는 왕대박 왕만두집을 찾았다.
★왕만두 유행 언제부터…?
왕만두는 이름 그대로 크기가 크다고 해서 붙여진 것. 왕만두가 되기 위한 객관적 기준은 없다. 손가락 세 마디가 채 되지 않는 일반만두보다 크기 때문에 ‘왕만두’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집집마다 왕만두의 크기는 조금씩 차이가 난다. 아이 주먹만한 것부터 핸드볼만한 것까지 크기도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짱’ 푸짐해 보이고, 한 개만 먹어도 든든하다.
그 전까지 왕만두는 일반음식점에서 요리에 곁들여 먹는 ‘사이드 메뉴’라는 인식이 강했다. 지금처럼 식사대용과 간식거리로 사랑 받게 된 것은, 왕만두를 직접 빚어서 파는 ‘왕만두전문점’이 생기면서부터다.
2년 전, 남대문 시장에 등장한 가메골손왕만두. 기존 만두와 찐빵을 섞어 놓은 듯한 ‘왕만두'를 선보이기 무섭게 문 앞에 이 만두를 맛보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다. 6개월 뒤, 다흰손만두가 ‘꽉찬 소’를 무기 삼아 남대문에 입점했다. 가메골vs다흰의 2인 경쟁구도가 갖춰진 것이다.
그리고 올 해 초. 서른 살, 서른한 살의 형제가 담백하고 깔끔한 맛으로 왕만두 경쟁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들이 시장이나 도로변에 위치해 서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면, 상해식품의 ‘상해만두’는 다소 높은 가격과 세련된 담음새로 백화점 고객을 공략했다. 또 있다. 남양주 조안면사무소 앞에는 조안본가의 왕만두를 맛보려는 사람들로 연일 북새통을 이룬다.
★도톰한 피, 부드러운 소 왕만두의 매력
소가 훤히 비치는 일반 만두와 왕만두의 가장 큰 차이는 ‘피’에 있다. 왕만두의 피는 일반 만두와 달리 발효반죽을 쓴다. 중력 밀가루 · 설탕 · 소금 이외에 이스트를 넣는데, 따뜻한 곳에 두면 이스트가 발효하면서 부풀게 된다.
흔히 만두는 소가 알차고 피가 얇아야 맛있다고 하지만, 왕만두 사정은 조금 다르다. 왕만두집 사장들은 “왕만두의 소에는 도톰한 피가 제격”이라고 입을 모았다. 청년손만두의 이정연(30)사장은 “왕만두는 피가 없으면 못 먹는 만두”라며 “너무 두꺼우면 피와 소가 따로 노는 느낌이 들고, 얇으면 소의 맛이 강해 금방 질려버린다”고 말했다.
가메골왕만두의 권오기(49)사장은 “만두라고 다 같은 만두가 아니다. 얇은 피의 만두에 어울리는 소와 왕만두에 적합한 소가 따로 있다. 왕만두의 피가 얇아지면 소의 식감도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왕만두 맛의 차이는 만두소에 달렸다. 그래서 집집마다 ‘만두소’의 노하우로 승부를 걸고 있다.
만두소의 식감이 제 각각인 이유다. 왕만두 소의 기본 재료는 무말랭이와 대두육(콩단백질), 갖은 채소, 약간의 돼지고기 등이다. 집집마다 비율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무말랭이가 30% 전후로 재료 중 비율이 가장 높은 편이다.
고기왕만두의 실제 돼지고기 비율은 15%가 채 되지 않는다. 고기만두를 먹을 때 고기라고 생각하며 씹는 것은 대부분 무말랭이다. 두부가 들어가는 집도 있지만, 두부는 쉽게 상하고 냉동보관하기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 대두육으로 대체한다. 집집마다 만두 맛이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 역시 무말랭이와 두부, 채소 등 재료 비율의 차이 때문이다.
다흰왕만두 동대문점 김선희(43)실장은 “고기를 많이 넣는다고 맛있는 만두가 아니다. 채소와 무말랭이를 줄이고 고기를 많이 넣으면 도리어 느끼해지기 쉽고 퍽퍽해 오히려 맛이 없다고 느껴진다”며 “중요한 것은 고기와 채소의 재료 배합률에 있다”고 말했다. 은은한 고기 향에, 무말랭이의 질겅한 식감, 양배추·부추·당면 등이 내는 맛이 한데 어우러져 “맛있다”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왕만두 크기…한계 있나?
왕만두는 일반만두에 비해 크긴 크다. 다흰왕만두찐빵 175g, 청년왕만두는 175g, 상해만두는 180g이다. 이들 만두의 반만한 크기인 가메골손왕만두는 개당 93g이다.
왕만두집은 달라도 묘하게 만두 무게는 대동소이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왕만두 크기와 무게는 '왕만두 사장들이 갖가지 실험과 경험을 통해 얻어낸 결론'인 동시에 '시각미와 마진율을 고려해 계산된 것'이다. 다흰손만두 동대문점 김선희(43)실장은 “어른 주먹만한 크기가 가장 푸짐해 보인다.
170g보다 작으면 고객은 1000원이란 가격을 비싸다고 생각해 사지 않고, 지금의 크기 보다 커지면 먹기에 부담스러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메골손왕만두의 권오기(49)사장은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도 매일 먹으면 질린다. 왕만두는 하나나 두개 먹었을 때 맛있게 느껴진다.
크기가 크면 하나도 다 먹지 못하고 버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년왕만두의 이정연(30)사장은 “만두집 이윤남기기가 하나의 이유”라며 “왕만두 하나에 300원 정도가 남는다. 지금보다 크기가 커진다면 재료비 · 가스비 · 인건비 등이 더 많이 들어가게 되므로 1000원에서 1500원 사이의 현 가격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