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똔띠나의 빵으로 맛본 세상] 가을에 더 맛있는 핫초코
2009. 10. 30. 19:53ㆍ게시판
[똔띠나의 빵으로 맛본 세상] 가을에 더 맛있는 핫초코 [JES]
가을인가 싶었는데 겨울이 오는 계절. 신종 플루에 독감 소식에 절로 몸을 움츠리기 쉬운 요즘이다. 아침 저녁 찬바람에 바들바들 떨다 지쳐버리기 쉬운 이 때,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초콜라떼 혹은 쇼콜라쇼이다. 스페인어로는 초콜라떼(chocolate), 불어로는 쇼콜라쇼(chocolat chard), 영어로는 핫초콜릿(hot chocolate). 겨울철 보양식으로도 제격이다.
초콜라떼와 쇼콜라쇼, 그 의미는 핫초콜릿이지만, 우리나라에서 흔히 접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매우 진하고 아주 걸쭉해서, 마신다고 하기보다는 –스푼으로- 먹는다는 게 더 잘 어울린다. 간혹 그 농도와 달기에 익숙하지 않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실은 얼마 전 파리에 가서야 프랑스 사람들에게도 쇼콜라쇼가 있다는 걸 알았다. 초콜릿에 관해서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프랑스이니 어느 나라가 원조인지는 모르겠다. 프랑스의 쇼콜라쇼는 다른 디저트나 요리처럼 세심해서 다양한 종류와 향을 자랑한다. 카페마다 조금씩 카카오의 농도가 다르고, 첨가하는 향도 다르다. 바닐라나 오렌지, 산딸기 등의 향을 곁들인 메뉴도 다양하다.
파리에서 이름난 카페에 갈 때마다 어김없이 쇼콜라쇼!를 외쳤다. '라뒤레'에서, '앙젤리나'에서, '뒤마고' 에서 프랑스 내에서 손꼽히는 마카롱과 몽블랑 등과 함께 쇼콜라쇼를 음미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파리의 '마티니' 카페에서 마신 오렌지 시럽을 넣은 쇼콜라쇼가 정말 최고였다.
매우 걸쭉하지만 부담스러움을 느낄 새도 없이 그 진한 초콜릿 향에 취해 풍덩~! 빠져버리고 싶어진다. 또한 초콜릿과 궁합이 잘 맞는 오렌지향은 매순간 코를 상큼하게 긴장시키면서도 초콜릿과 어우러져 새콤달콤한 신세계로 인도한다.
모든 쇼쿌라쇼가 훌륭했고, 매순간 행복했지만, 매번 스페인의 초콜라떼 꼰 추로스의 기억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건 마치 멋진 인피니티 세단을 모는 애인을 옆에 두고서 르망이나 포니2를 타던 과거의 애인을 잊지 못하는 식일 것이다. 동네 골목마다 있는 소박한 카페에서 초콜라떼에 추로스를 푹푹 찍어먹던 그 맛은 왜 이리 잊혀지지 않는 것일까?
초콜라떼 콘 추로스(Chocolate con Churros). 스페인의 대표적인 간식이요, 아침식사이자, 인기 해장 메뉴이다. 프랑스의 쇼콜라쇼처럼 걸쭉한 핫초콜릿에 추로스라는 밀가루 튀긴 것을 찍어 먹는다. 기호에 따라서 까페 콘 추로스라고 하여 밀크커피인 까페꼰레체와 곁들여 먹기도 한다.
우리나라 놀이공원에서 판매하는 추로스는 계피와 설탕을 버무려서 그 자체로도 달지만, 스페인의 추로스는 기름에서 건져 낸 그대로를 일컫는다. 길이는 우리나라 것의 1/2이나 1/3 , 모양이 구부러진 것도 있고, 일자(一)인 것도 있다. 올리브 기름에 튀기니 고소한 맛이 나지만 그 자체로만은 특별함을 다 할 수 없고, 반드시 초콜라떼에 찍어먹어야 제 맛이다.
기름으로 반죽해서 기름으로 튀겨낸 것을 걸쭉한 초콜릿에 찍어먹는다고 머리로만 생각하면 끔찍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한번 먹어보시라"는 말이 이런 때 필요한 말일 정도로 그 조화는 기가 막히다.
스페인의 아침 출근이나 등교 시간에 동네 까페는 이 초콜라떼 콘 추로스와 까페꼰레체를 마시는 이들로 붐빈다. 아침부터 핫초콜릿이라는 문화가 우리에게는 이질적으로 다가오지만, 이들에게는 해장음식이기도 하다.
초콜라떼 꼰 추로스로 마드릿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중 하나는 시내 솔 광장 근처에 있는 산 히네스(San Ginés). 100년도 넘은 이 카페의 피크 타임은 아침 6~7시부터 시작된다. 밤새 디스코텍이나 바를 전전긍긍하던 사람들이 해장을 하러 모여들기 때문이다.
갓 튀겨낸 추로스를 받아 안고 초콜라떼에 찍어 먹으면서 간밤 소비된 에너지를 보충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해장 문화이지만 어쩌면 그들에게는 '선지해장국'이 더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홍차나 카푸치노도 좋지만 이렇게 찬바람이 불어올 때면 역시 초콜라떼 콘 추로스 생각이 간절하다. 마치 가을 찬바람이 서쪽에서 불어오는 양~.
▶똔띠나는
평범한 샐러리걸이지만 ‘빵 사색가’로 불리길 좋아한다. 즐거운 일이 있으면 빵으로 축하를 하고 우울한 일이 있으면 빵 먹고 씩씩함을 다짐한다. 땅꼬마부터 다니던 단골 제과점의 주인이 대한민국 손꼽는 기능장이 되기까지 열심히 빵을 먹어왔다. 늘 빵을 생각하고, 빵을 쇼핑하며, 빵을 그리워한다. 그러다보니 한달에 빵값으로 좀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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