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15. 18:40ㆍ 인물열전
정선전씨 제2파 복야공파(僕射公派) 첨의부좌복야(僉議府左僕射)
전길(全佶)
정선전씨 28세로
2파 복야공파 (僕射公派) 시조입니다.
평북 정주군(定州郡)을 중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公께서 밀직부사로 재임 시인
1231년(고려 고종18년) 8월에
몽고 태종은 고려국을 침략할 계략을 세우고, 몽고의 장군 살례탑으로 하여금 고려국을 치게 하였다.
몽고 장군 원수(元帥) 살례탑이 별군을 이끌고 우리나라 의주 땅에 침범하였을 때,
문무를 겸비한 공께서는 이들 침략자들을 좌시할 수 없어 우국충정(憂國衷情)의 정신으로 휘하군졸을 거느리고 용약출정(勇躍出征)하여 의주에서 몽고병을 맞아 격전 끝에 몽고군 다수를 살육하고 포로로 붙잡아 크게 전공을 세워 고려국의 위맹을 떨친바가 있었다.
그 후 조정에서 논공행상을 함에 있어 공의 훈공을 인정하고 첨의부좌복야(僉議府左僕射)로 제수하였다.
▷첨의부
고려 후기 중앙의 최고 행정관청으로,
1275년(충렬왕 1) 원의 간섭에 의해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이 합해져 첨의부로 되었다. 1293년에 도첨의사사로 개칭되었으며, 1356년(공민왕 5) 반원개혁정치의 일환으로 문종 때의 관제를 복구할 때 첨의부가 없어지고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이 각각 복구되었다. 그러나 1362년 다시 합해져 도첨의부로 되었다가 1369년에 문하부로 바뀌었다.
▷좌복야
고려시대에는 백관(百官)을 총관하던 상서도성(尙書都省)의 정2품 벼슬이었다. 상서좌복야의 줄인 말이다. 문종 때에는 상서령(尙書令) 다음가는 차관직이며, 1275년(충렬왕 1) 상서도성이 첨의부(僉議府)로 개편될 때 폐지하고, 1298년(충렬왕 24)에 다시 첨의부에 두었다가 곧 폐지되었다.
1356년(공민왕 5) 상서성이 다시 설치됨에 따라 여기에 다시 두었다가 폐지되었다.
▷밀직부사(密直副使)
밀직사(密直司)의 소속으로 왕명의 출납, 궁중의 숙위, 군기 등을 맡아보던 관청의 정3품의 관직(官職).
▷ 射
◦ ㉦향사례(鄕射禮: 한량들이 편을 갈라 활쏘기를 겨루던 일)
▷ 어떤 곳을 보면 “복사공파”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복야공파”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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