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전씨 20세 판전농시사 전총

2009. 11. 17. 12:43 인물열전

 

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

전 총 (全 寵)


정선전씨 20세로

  공이 주부(主簿)로 재직할 때 원지에 유배되었다가 숙종 때 몽사(蒙赦)되었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후 사면 복권되어 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를 역임하셨다.

정선군 덕우리 지족산에 단소가 있습니다.

궁중 권력 다툼에 연계되어 억울한 유배생활을 하게 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자의(李資義)는 중서령(中書令) 이자연(李子淵)의 손자(孫子)요 시중(侍中) 이정(李)의 아들이니 선종(宣宗) 때에 누천(累遷)하여 호부 상서(戶部尙書)가 되었고,

헌종(獻宗) 원년(元年)에 중추원사(中樞院使)를 제배(除拜)하였다. 처음에 선종(宣宗)이 상서(尙書) 이석(李碩)의 딸을 드리어 후(后)를 삼아 왕(헌종(獻宗)) 을 낳고

 또 이자의(李資義)의 누이를 원신 궁주(元信宮主)로 드리어 한산후(漢山侯) 왕윤(王)을 낳으니 왕이 유약(幼弱)하고 병이 있어 능히 청결(聽決)치 못한지라 모후(母后)가 국사(國事)를 오로지 하니 좌우(左右)가 그 사이에 방황하니

이자의(李資義)는 재화(財貨)를 탐모(貪冒)하여 무뢰(無賴)한 용사(勇士)를 모아 기사(騎射)로 일을 삼으며 항상 말하기를,

“주상(主上)이 병이 있으니 조석(朝夕)으로 보존키 어렵고, 외저(外邸)에서 엿보는 자가 있으니 너희들은 마땅히 힘을 다하여 한산후(漢山侯)를 받들어 신기(神器)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지 말게 하라.”

하고 군사를 금중(禁中)에 모아 대사(大事)를 거행코자 하거늘

때에 숙종(肅宗)이 계림공(鷄林公)이 되어 명복궁(明福宮)에 있다가 비밀히 이를 알고 평장사(平章事) 소태보(邵台輔)에게 설유하기를,

“국가의 안위(安危)가 재상(宰相)에게 매였으니 지금 일이 급(急)하니 공(公)은 이를 도모하라.”

하여 소태보(邵台輔)가 상장군(上將軍) 왕국모(王國)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들어와서 시위케 하니

왕국모(王國)가 먼저 장사(壯士) 고의화(高義和)를 시켜 이자의(李資義)를 선정문(宣政門) 안에서 베고 그 당(黨)인 합문 지후(閤門祗候) 장중(張仲), 중추원(中樞院) 당후관(堂後官) 최충백(崔忠伯) 등을 선정문(宣政門) 밖에서 죽이고

병사(兵士)를 분견(分遣)하여 이자의(李資義)의 아들 주부(注簿) 이작(李綽)과 흥왕사(興王寺) 대사(大師) 지소(智炤), 장군(將軍) 숭렬(崇列)․택춘(澤春)과 중랑장(中郞將) 곽희(郭希), 별장(別將) 성보(成甫)․성국(成國)과 교위(校尉) 노점(盧占), 대정(隊正) 배신(裵信) 등 17인을 잡아 다 죽이고

평장사(平章事) 이자위(李子威), 소경(少卿) 김의영(金義英), 사천 소감(司天少監) 황충현(黃忠現), 봉어(奉御) 황영(黃榮), 소감(少監) 서황(徐晃), 시어사(侍御史) 왕태소(王台紹), 지후(祗侯) 이자훈(李資訓), 녹사(錄事) 이경비(李景泌)․최연(崔淵),

주부(注簿) 전총(全寵),  왕진(王縝), 판관(判官) 이자령(李滋令),김표(金彪), 사진(司辰) 황완(黃玩), 전전 승지(殿前承旨) 염정(廉正), 장군(將軍) 이보(李甫),오창(吳昌), 낭장(郞將) 구현(仇賢),양개(良), 별장(別將) 안린(安鱗),진기(珍奇), 산원(散員) 유총(惟寵),최행(崔幸),임자성(林自成),후선(侯善),김전(金錢),이현맹(李玄孟),강희백(康希白),정정좌(鄭貞佐) 등 50여 명을 남쪽 변방에 귀양 보내고

 적당(賊黨)의 처자(妻子)를 적몰(籍沒)하여 양계 주진(兩界州鎭)의 노비(奴婢)를 삼았다. 숙종(肅宗) 초에 어사대(御史臺)가 아뢰기를,

“적신(賊臣) 이자의(李資義) 등이 미곡(米穀)을 사축(私畜)한 수가 거만(鉅萬)에 이르는데 이는 다 백성을 벗겨 모은 것이니 바라건대 모두 관(官)에 몰수하소서.”하였다.


▷주부(主簿) 

 고려 시대에, 여러 관아에 둔 육품에서 팔품까지의 벼슬. 선부, 사헌부, 춘추관, 전교시 따위에 두었다.


▷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

  판사농시사(判司農寺事)

   고려·조선시대, 사농시으뜸벼슬. 품계는 정삼품이다.

▷ 사농시(司農寺)

고려시대에, 나라제사에 쓸 곡식과 적전(籍田)의 을 맡아보던 관아. 전농사, 저적창, 전농시 따위로 여러 차례 이름고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