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전덕명(全德明)

2010. 6. 2. 15:06 인물열전

 

독립운동가 전덕명(全德明)


?∼1926. 독립운동가. 호는 죽파(竹坡). 평안북도 용천출신.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뒤 수차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복역하였다.

1921년 만주에서 독립운동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던 종형 덕원(德元)을 찾아 만주로 망명,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해에 남만주 각 단체 통일후원회를 조직하여 단체통합을 주선하다가 마적에게 체포되어 고생한 바 있다.

1922년 양기탁(梁起鐸)과 같이 각단체통합을 목표로 통일위원회를 구성하고 선전공작대(宣傳工作隊)를 조직, 대장으로 활동하였으며, 그 결과 한족회(韓族會)·독립단(獨立團)·광한단(光韓團) 등 몇개의 단체를 통합하여 통군부(統軍府)가 결성되었다.

1926년 남만주 각 단체 통일후원회장으로 고마령(古馬嶺)산 속에서 개최된 군사회의에 참석하였다가 일본경찰의 기습을 받고 참의부참의장(參議府參議長) 최석순(崔碩淳) 등 독립단체의 간부들과 같이 전사하였다.

1968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고마령전투

육군주만참의부는 국내공작에 대한 작전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고마령에서 5개 중대의 군사회의를 열었다. 밀정들의 정보로 이를 탐지한 평안북도 초산경찰서에서는, 경부보(警部補) 미즈노[水野宅三郞]의 지휘하에 왜경 65명, 수비대 120명을 동원하여 육군주만참의부 군대를 기습하였다. 미즈노는 한국인 순사부장 고피득(高彼得)과 밀정 이죽파(李竹坡)를 앞잡이로 삼았다.

      이 기습으로 참의장(參議長) 최석순(崔碩順), 중대장 전창희(田昌禧),

     고문 전덕명(全德明) 등 29명이 전사하고, 고문 홍주(洪疇)는 체포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참고문헌]

抗日殉國義烈士傳(吳在植, 行政新聞社, 1959)

독립운동사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大韓民國獨立運動功勳史(金厚卿·申載洪, 韓國民族運動硏究所, 1971)

獨立有功者功勳錄 4(國家報勳處, 1987). 〈申載洪〉

 


 
자료소개

중문. 전덕명(全德明)의 진술에 근거하여 취조한 문서이다. 전덕명은 관전현과 환인현을 오가면서 활동하다가 고창구(庫倉拘) 산상에서 경찰에 붙잡혔으며, 강영해(姜英海), 장계후(張啓厚), 강걸문(姜傑文), 강계화(康 和)의 진술을 다시 검토하여 심문해야겠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